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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열며] 아름다운 사람

1800년대 후반 미국 개척 당시 가난한 시골 동네에 의사는 한 명뿐이었다. 그는 마을의 아픈 사람들을 돌보느라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 속이 아픈 사람, 사고로 다친 사람, 아기를 받는 일,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전염병이 창궐한 마을에도 그가 있었고, 마을 사람들의 마지막 임종도 그가 지켜내고 있었다. 내과, 소아과, 외과, 산부인과를 막론하고 사람이 아픈 곳에 항상 그가 있었다.   그는 마을에서 존경받는 의사로, 또는 시골 사람들의 이웃이며 친구로 늙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이제 자신이 오래 떠나왔던 도시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 짐을 챙기려고 사무실의 캐비넷 문을 열었을 때 우르르 발밑으로 쏟아져 내리는 감자, 고구마, 옥수수, 호박들을 보며 화가 난다. 가난한 시골 사람들이 진료비 대신 가져온 것들이다. 그들은 돈이 없으니 그것으로 성의를 보인 것이다. 그러나 그 의사는 감자, 고구마를 보지 않고 오직 환자만 보았다, 가족도 없이 혼자 사는데 그것들은 그에게 별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마워하는 성의를 무시하지 않으려 받아놓았을 것이다.   오래 일을 했으나 모은 돈도 없이 빈털터리로 돌아가는 자신이 처량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화를 삭이며 마차를 몰고 마을을 빠져나갈 무렵 저 뒤에서 한 소년이 마차를 향해 뛰어오며 의사를 부른다. 옆집 아주머니가 산통이 심하여 의사를 부르러 왔다는 소년의 말을 듣고 그는 즉시 마차를 돌려 환자에게로 간다. 그리고 그는 다시 그 마을의 의사로 마을 사람들 곁에 남기로 결심한다. 내가 있을 곳은 여기라고….   그 시대를 살았던 로라 잉걸스 와일더의 자전적 소설을 드라마로 만든 ‘초원의 집(Little House on the Prairie)’에 나오는 시골 의사 이야기다.   20년 전부터 어린 손녀를 안고 소아과를 드나들었었던 나는, 엊그제 제 어미의 부탁으로 막냇손자 정기검진을 위해 아이를 데리고 그 소아과에 갔다. 오랜만에 본 의사는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의 모습이었다. 나는 더 늙었을 텐데, 내 눈에는 새파랗게 젊었을 적의 맑게 웃던 청년 모습만 아직도 그려져 있었나 보다. 병원을 나오면서도 왠지 마음이 짠하게 울린다.   대부분의 아이는 병원 문밖에서부터 무섭다고 운다. 발버둥 치며 우는 아이를 억지로 붙잡아 겨우 진찰을 마치면 의사 선생님은 잘했다고 아이를 달랬다. 그렇게 의사 선생님의 진을 빼고 키운 손녀는 벌써 대학생이 됐다.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함께 늙고 있는 그 의사가 요즘 들어 부쩍 더 존경의 마음이 든다.   돈벌이가 안되는 소아과, 그러나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는 것을 자신에게 주어진 하늘의 은혜로 여기며 욕심부리지 않고 묵묵히 의사의 길을 가고 있다.     한국은 요즘 의사 대란을 겪고 있다. 그것은 우리 부모들의 탓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의 욕심이 아이들을 공부로만 내몰고 의사가 되어 돈을 많이 벌고 잘 살라는 이기심만을 키워준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고귀한 의술이 돈벌이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이 심히 안타깝다.     ‘나는 나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내가 환자의 이익이라 간주하는 섭생의 법칙을 지킬 것이며 심신에 해를 주는 어떠한 것들도 멀리하겠노라’라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에서 사람을 사랑하라는 마음이 먼저임을 읽을 수 있다. 그 어떤 이유로도 아픈 사람을 방치하면 안 되는 것이 의사의 의무이며 인류애의 실천일 것이다.   사람들의 아픔을 보듬어 고치는, 늘 고맙고 존경스러운 의사들의 모습을 계속 보고 싶은 마음이다. 이경애 / 수필가하루를 열며 시골 의사 의사 선생님 요즘 의사

2024-05-20

[발언대] 한국의 의료 대란,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이 의료대란으로 시끌벅적하다. 사회적 협의 없이 의대 정원을 매년 2000명씩 증원한다는 정부 측 발상도 문제지만, 그 때문에 환자를 볼모(?)로 단체행동에 나서는 의사 측도 환영받을 일만은 아니다.   문제는 갈등의 실마리가 된 정부의 의대 증원 발상이다. 선거용 표퓰리즘 등 정치적으로 의심의 소지가 많았기 때문이다. 과거 정부도 유사한 시도를 했다 곤욕을 치른 사실을 알면서, 의사면허 취소, 정직 등 강압적 수단으로 해결하려는 마인드도 문제다.   무엇이 의료 대란의 근본 문제일까? 의사라는 직업은 소명없이는 힘든 길이다. 평생 아픈 환자를 상대하기에 웬만큼 내공을 키우지 않으면 우울증 걸리기에 딱 좋은 직업이기 때문이다.     의사는 돈 잘 벌고 명예도 있어 보이는 직업이지만 적성에 안 맞으면 고생길이다. 한국에서 수재들이 의대로 몰리는 추세는 학생 자신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은 병폐 현상이다. 돈을 벌려면 기업인의 길을 택해야 하고, 명예나 권력을 원한다면 변호사나 정치인이 되는 것이 낫다.       의업은 병을 고치는 일이어서, 돈을 낸만큼 환자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아픈만큼 환자를 돌봐야 한다. 의업은 돈을 벌기 위한 직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의사의 소명은 오로지 아픈 사람에게 헌신하는 일이다.     때마침 의사의 보람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사랑의 처방전’ 이라는 감동적인 글이 있어 소개한다.     영국의 한 시골 병원에 초라한 행색의 부인이 찾아와 애원했다. “의사 선생님, 지금 제 남편이 죽어 갑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의사가 하던 일을 멈추고 서둘러 와진가방을 챙겨 들었다. 그런데 부인은 의사의 눈치를 살피며 이렇게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미리 말씀드리는 데 저는 지금 가진 돈이 한푼도 없습니다.”     의사가 대꾸했다. “그게 무슨 대수라고! 우선 사람부터 살려야지요.” 의사는 부인을 따라 어느 낡고 초라한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서둘러 누워있는 남편을 진찰해 보고 나서 말했다. “부인, 큰병은 아니니 안심하십시오.” 이말에 부인은 진정으로 의사에게 감사했다.     부인을 데리고 병원에 돌아온 의사는 작은 상자 하나를 부인에게 전하며 말했다.  “집에 가서 열어 보세요. 그리고 이 안에 적힌 처방전대로 하면 남편분의 병은 곧 나을 겁니다”. 감사 외에는 보답할 방법이 없었던 가난한 부인은 너무나 고마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상자를 열었다.     그 순간 부인은 너무 놀란 나머지 숨이 멈추는 듯했다. 그 안에는 처방전 대신 한뭉치의 지폐와 함께 쪽지 한장이 들어 있었다. 그 쪽지에 적힌 글이 그녀를 더 울렸다.     “처방전 : 남편의 병은 극도의 영양실조와 과로가 원인입니다. 이 돈으로 먹을 것을 사서 충분히 먹이고 당분간 푹 쉬게 하면 남편은 곧 나아질 겁니다.” 부인은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바닥에 무릎을 꿇고 계속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이는 올리버 골드 스미스라는 영국 의사의 실화다. 의술을 베푸는 의사들의 보람과 행복이 무엇인지 충분히 말해주고 있는 것 아닐까? 김재동 / 의사·수필가발언대 한국 의료 의료 대란 의사면허 취소 의사 선생님

2024-04-30

[삶의 뜨락에서] 교감

어떤 사람이 절룩거리며 병원 로비에 들어섰습니다. 안내원이 다가가서 “다리가 아프시군요” 라고 하니 이 사람이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안내원은 그 사람을 정형외과 의사에게 안내했고 정형외과 의사는 발을 본 후 X-ray를 찍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이상이 안 나타나자 MRI를 찍었습니다. 그리고 이상이 없자 신경외과 의사에게 보냈습니다. 신경외과 의사는 진찰한 후 머리의 CT를 찍고 MRI 검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상을 발견할 수 없자 신경내과 의사에게 보냈습니다. 신경내과 의사가 검사한 후 뇌파 사진을 찍고 여러 가지 검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안과의사에게 보냈습니다. 안과의사는 다시 안저 검사를 하고 MRI를 찍고 처방을 지어 주었습니다.     며칠 후 이 환자가 다른 일로 병원에 들어왔습니다. 안내원이 다가가서 “이제는 절지 않으시는군요. 약의 효과가 있지요” 라고 하니까 환자가 작은 소리로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요. 구두에 삐져나온 못을 빼버린 것뿐이요” 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환자와 의사의 의견이 소통되지 않은 것뿐입니다.     오래전 외래에 노인 한 분이 오셨습니다. 환자를 앞에 앉게 하고는 “아저씨 어떻게 오셨어요” 하고 물었습니다. 환자는 씩 웃더니 “젊은 의사 선생, 내가 돈을 내고 왔으니 의사 선생이 맞춰야지요. 내가 왜 여기 왔겠소” 라고 말을 했습니다. “네. 아저씨. 아저씨 몸이 편치 않으시죠. 얼굴이나 손발은 아니고 속병인 것 같은데 한번 만져는 보아야 알 것 같군요” 하고는 진찰대에 눕히고는 여기저기 만져 보고 눌러 보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명치 끝을 눌러보니 환자가 얼굴을 찌푸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진찰을 마치고 “소화가 잘 안 되는군요” 했더니 “그래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제는 문제가 좀 해결이 된 듯하여 “속이 쓰리십니까, 아니면 소화가 안 되십니까. 내 생각으로는 속이 쓰리신 것 같은데요” 라고 이야기를 끌어나가고 처방전을 주고 약이 듣지 않으면 위내시경을 해보자고 하여 보낸 일이 있습니다.      얼마 전 심장내과 선생님에게 진찰을 받으러 간 일이 있습니다. 한 20분을 기다리다가 의사 선생님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의사는 나에게 “내가 묻는 말에만 대답하세요” 하고 나의 말문을 막았습니다. 그곳은 의사의 사무실이었고 나는 그가 하라는 대로만 해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진찰하면서 그가 묻는 말에 대답하였고, 나는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가 있었습니다만 그 의사는 환자의 접근 방법이 이상했습니다.     물론 의사 사무실에 와서 자기의 조상 이야기부터 집안의 가정사를 늘어놓아 시간을 끄는 환자들을 정리하기 위해서 그랬겠지만 “묻는 말에만 대답하세요”라는 말은 검사나 경찰들이 쓰는 말투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요새는 의료보험에서 진료비를 적게 주니까 10분 안에 환자를 한 사람 진료해야지 옛날처럼 환자가 자기의 팔자타령까지 다 들어주다가는 병원을 운영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한국의 이름난 소아과 의사나 내과 의사는 하루에 150~ 250명을 진료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환자 한명당 3~4분 이상을 끌면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환자를 보기 전 검사부터 시키고 검사결과에 따라 처방전 4번, 5번으로 불러 주어야 병원이 운영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구두에 못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기 전 X-Ray, MRI를 하고 환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건 어쩐지 잘못된 것 같네요. 이용해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교감 의사 선생님 신경내과 의사 정형외과 의사

2022-08-18

[삶의 뜨락에서] 교감

어떤 사람이 절룩거리며 병원 로비에 들어섰습니다. 안내원이 다가가서 “다리가 아프시군요” 라고 하니 이 사람이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안내원은 그 사람을 정형외과 의사에게 안내했고 정형외과 의사는 발을 본 후 X-ray를 찍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이상이 안 나타나자 MRI를 찍었습니다. 그리고 이상이 없자 신경외과 의사에게 보냈습니다. 신경외과 의사는 진찰한 후 머리의 CT를 찍고 MRI 검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상을 발견할 수 없자 신경내과 의사에게 보냈습니다. 신경내과 의사가 검사를 한 후 뇌파 사진을 찍고 여러 가지 검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안과의사에게 보냈습니다. 안과의사는 다시 안저 검사를 하고 MRI를 찍고 처방을 지어 주었습니다. 며칠 후 이 환자가 다른 일로 병원에 들어왔습니다. 안내원이 다가가서 “이제는 절지 않으시는군요. 약의 효과가 있지요” 라고 하니까 환자가 작은 소리로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요. 구두에 삐져나온 못을 빼버린 것 뿐이요” 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환자와 의사의 의견이 소통되지 않은 것뿐입니다.     오래전 외래에 노인 한 분이 오셨습니다. 그때는 등록하면서 자세한 정보를 미리 적어 넣지 않을 때라 환자를 앞에 앉게 하고는 “아저씨 어떻게 오셨어요” 하고 물었습니다. 환자는 씩 웃더니 “젊은 의사 선생, 내가 돈을 내고 왔으니 의사 선생이 맞춰야지요. 내가 왜 여기 왔겠소” 라고 말을 했습니다. 나는 아이쿠 바로 그런 양반이라고 생각하고 “네. 아저씨. 아저씨 몸이 편치 않으시죠. 얼굴이나 손발은 아니고 속병인 것 같은데 한번 만져는 보아야 알 것 같군요” 하고는 진찰대에 눕히고는 여기저기 만져 보고 눌러 보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명치 끝을 눌러보니 환자가 얼굴을 찌푸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진찰을 마치고 “소화가 잘 안 되는군요” 했더니 “그래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제는 문제가 좀 해결이 된 듯하여 “속이 쓰리십니까, 아니면 소화가 안 되십니까. 내 생각으로는 속이 쓰리신 것 같은데요” 라고 이야기를 끌어나가고 처방전을 주고 약이 듣지 않으면 위내시경을 해보자고 하여 보낸 일이 있습니다.     얼마 전 심장내과 선생님에게 진찰을 받으러 간 일이 있습니다. 물론 의사를 보기 전에 미리 작성한 서류에 의사를 찾은 목적과 과거력을 자세히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한 20분을 기다리다가 의사 선생님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의사는 나에게 “내가 묻는 말에만 대답하세요” 하고 나의 말문을 막았습니다. 그곳은 의사의 사무실이었고 나는 그가 하라는 대로만 해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진찰하면서 그가 묻는 말에 대답하였고, 나는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가 있었습니다만 그 의사는 환자의 접근 방법이 이상했습니다. 물론 의사 사무실에 와서 자기의 조상 이야기부터 집안의 가정사를 늘어놓아 시간을 끄는 환자들을 정리하기 위해서 그랬겠지만 “묻는 말에만 대답하세요”라는 말은 검사나 경찰들이 쓰는 말투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요새는 의료보험에서 진료비를 적게 주니까 10분 안에 환자를 한 사람 진료해야지 옛날처럼 환자가 자기의 팔자타령까지 다 들어주다가는 병원을 운영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한국의 이름난 소아과 의사나 내과 의사는 하루에 150~ 250명을 진료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환자 한명당 3~4분 이상을 끌면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환자를 보기 전 검사부터 시키고 검사결과에 따라 처방전 4번, 5번으로 불러 주어야 병원이 운영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구두에 못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기 전 X-Ray, MRI를 하고 환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건 어쩐지 잘못된 것 같네요. 이용해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교감 의사 선생님 신경내과 의사 정형외과 의사

2022-08-12

[삶의 뜨락에서] 이제는 나의 미련을 내려놓으렵니다

새해 나의 결의를 썼던 그 날이 벌써 달포가 지났습니다. 그 후 내 결의를 실행하려고 부지런히 움직였습니다. 얼마간 머리도 복잡했습니다. 나이 들어가며 몸이 하루가 달라지는 느낌도 신경이 쓰였습니다. 하여 다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어졌습니다. 북쪽 막내 집으로 갔습니다. 국물 몇 가지로 남편 어접살이를 준비해 놓고는 나를 위해서라는 핑계를 남기고 도망을 갔더랍니다. 도착 다음 날 돌연 어지럼증세가 최악에 기승을 올리며 저를 눕혀버렸습니다. “노인네 남편을 홀로 두고 어디를 갔느냐?” 였을까요? 열흘간을 자리에 눕고 말았습니다.     몇 가지 부풀었던 나의 계획이 물거품이 되어 어지럼증과 함께 동그라미를 그리며 흐트러져 갔습니다. 엄살이 심한 편은 아니고 싶지만 처음 경험하는 그 증세가 차라리 아픔(pain)이고 싶었습니다. 일어나 자유롭게 거동을 할 수 없어 자리에 누워 있는 내 머리에는 오만가지 생각들이 나를 지혜롭게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나이까지도 끼어들어 맞장을 칩니다.   그동안 몇 가지 나의 새로운 계획이 실천으로 진전되어감이 분명했었습니다. 바느질, 그림 그리기, 철저한 집안 정리, 외간 활동 줄이기, 규칙적인 운동, 물 마시기 등등! 시시한 것들 같지만 생각하면 적절히 중요한 것들이었습니다. 그중 가장 커다란 제목이 있었습니다. 늙어서 다 녹슬어버린 나의 목청 재훈련을 목적으로 레슨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평생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나의 전공, Primadonna의 꿈은 벌써 집어던졌지만 그래도 내 옛 목소리를 기다리는 친지들이 있다는 착각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나의 자존심을 축적해줄 것이라는 가장 큰 과제 즉 나의 자신감을 키워 줄 저만의 확신이었습니다. 나 이제 나이 80에 와서 과연 내가 친지나 청중들에게 좋은 노래를 선사하고 그래서 나 자신이 세상 끝에서 참 잘 살았다는 만족한 가슴을  안고  떠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제 머리를 어지럽히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고, 나이 80에 창가 하느라 애 많이 쓰고 수고했다!” 이 소리가 흉보다는 동정으로 들리면서 나의 분수를 말해 주는 듯했습니다. 이제 나는 미련을 다 버리겠다는 각오가 됐습니다. 정신 차리라고 제 머리를 마사지 대신 또닥또닥 두들겨 주었습니다.     우리의 삶은 시간과 때가 있는 것이라 어지러움이 알려 주었습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흘러가지 말라 해도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나의 길고도 짧은 생을 어떻게 살았던, 내가 이제 이 자리에 와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나의 기억은 오로지 고마움과 감사였습니다. MRI를 찍으며 더 살고 싶다고 하느님께 소원했습니다. 소원을 빌며 염치가 없노라고 용서도 빌었습니다. 내가 이제 와서 더 살고 싶다는 그 이유를 간단히 말하자면 별것도 아닐지 모르겠지마는 저에게는 이렇게 급속도로 발전하고 변해가는 세상, 내 아이들과 모든 젊은이의 세대, 즉 우리 인간의 세계가 어떤 모습으로 바뀔까?  참으로 보고 싶어서입니다. 검사 결과가 Good News라는 의사 선생님의 답이었습니다. 기쁨에 감정을 조절했습니다. 결과 하나가 더 남아 있습니다. 염치가 없지만 오늘 여러분께 사랑의 기도를 구걸하며 이글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남순자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미련 노인네 남편 나이 80 의사 선생님

2022-03-24

[오늘의 생활영어] (So) what‘s the word?; (그래) 어떻게 됐어?

 (Mark is talking to his parents about his latest visit to his doctor…)   (마크가 최근에 받은 의사 진료에 대해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한다…)   Mom: So what did the doctor say?   엄마: 그래 의사 선생님이 뭐라고 하든?   Dad: Yes so what's the word?   아빠. 맞아 어떻게 됐어?   Mark: He said he was surprised that my leg was healing ahead of schedule.   마크: 다리가 예상보다 빠르게 낫고 있어서 놀랐대요.   Dad: Didn't he say it would be about six weeks before you could play football again?   아빠: 한 6주는 있어야 다시 풋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얘기는 안 하든?   Mark: Yes but he said I might be able to play sooner.   마크: 예. 한데 그보다 빨리 경기를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했어요.   Mom: How much sooner?  엄마: 얼마나 빨리?   Mark: He didn't say but I'm thinking it might be just four or five weeks.   마크: 그 말은 없었는데 4 5주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Mom: Don't rush things Mark.   엄마: 마크 서두르지 마라.   Dad: Your mother's right. You want your leg the heal properly or you could make matters worse.   아빠: 엄마 말이 맞다. 다리를 제대로 치료해야지 아니면 더 악화될 수도 있어.   Mark: That's what he said. I'll take his advice and let it heal the right way.   마크: 의사 선생님 말씀도 그래요. 선생님 충고대로 제대로 아물게 할 거에요.   기억할만한 표현   *ahead of schedule: 예정보다 앞서.     “The building is going to be finished ahead of schedule.” (저 건물은 예정보다 빨리 완공될 거야.)   *Don’t rush things:서두르지 마.     “How can you say you love her when you just met her. Don’t rush things.” (그녀를 이제 막 만났는데 어떻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니. 서두르지 마.)     *take (one’s) advice: 충고를 받아들이다.     “I’m going to take my father’s advice and buy a car that has the best mileage.” (아버지 말씀대로 연비가 제일 좋은 차로 살 거야.)

202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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